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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앙을 만나는 세 가지 방법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해도 아무리 절세미남이라 해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역이 있다. 느낌과 실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인물, 희대의 카사노바 돈 주앙이 그렇다. 아직까지 그보다 섹시한 캐릭터는 없었고 그보다 매혹적인 속삭임을 건네는 이도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들에게는 '작업의 정석'이자 여자들에게는 기꺼이 유혹당하고 싶은 호색한, 돈 주앙. 그를 연기해야 하는 세 남자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보고, 이해로 시작해 같은 마음이 되는가 하면, 가진 모든 걸 걸어 보며 각자의 방법으로 간절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돈주앙을 만나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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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서 동감에 이르기까지_김다현

오랜만에 만난 김다현에게선 '꽃'보다 '남자'가 보였다. 호기심이 가득한, 때로는 사람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던 무구한 눈빛은 깊어졌고, 한 톤 다운된 말투, 제법 묵직해진 주변 공기는 분명 그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인륜지 대사를 치른 까닭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돈 주앙>에 있을 것이다. "팬 분들이 붙여준 '꽃다현'이란 별명은 민망하다가도 외모만 보다가 무대에서 보여준 연기와 열정 때문에 김다현을 다시 보게 됐다는 평에 감사하죠. 전 늘 좀 더 새로운 작품,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변화가 없다면 깊이도 없는 거니까. 신기하게도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역할에 몰입하다 보면 생활 패턴이 조금씩 바뀌어요. <돈 주앙>을 하면서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고 내 중심적인 부분이 많아졌어요.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건 돈 주앙이란 캐릭터에 푹 빠져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에게 <돈 주앙>은 마치 운명이 정교하게 짜놓은 각본처럼 다가왔다. 작품에 대한 확신과 욕심이 있었지만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엄두를 못내 던 차 입대가 연기되면서 곧장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지만 그는 좀 더 고생하고 노력하더라도 이 무대에 꼭 서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의 왕자님 같은 이미지도 <프로듀서스>에서의 순수하고 어리버리한 느낌도 <헤드윅>에서의 새콤달콤함도 <폴인 러브>에서의 솔직담백함도 아닌 남성적인 강인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캐릭터. 그는 자신이 느낀 돈 주앙을 만들기 위해 점점 더 파고드는 중이다. "프랑스 뮤지컬은 대사가 없기 때문에 감정을 쭉 끌고 가는 게 어려워요. 노래 안에 연기력이 많이 요구되죠. 특히 극중에서 돈 주앙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데 거기에는 타당성이 있어야하고 그 죽음에 관객이 같이 슬퍼하고 연민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1막에서의 방탕한 모습과 2막에서 사랑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는 무게 중심이 관건일 거예요. 그래야 '돈 주앙이 사랑으로 죽는다'라는 게 정확히 전달이 될 것이고 종국에는 감동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멜로디도 가사도 채 익히지 못한 시점부터 연습은 런쓰루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가사보다 동선이 먼저 몸에 배어 뒤늦게 합류한 스페인 댄서들과 즉각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전체 음악 35곡 중 돈 주앙이 불러야 할 노래는 18곡. 김다현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래 안에 담긴 이야기의 전달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로 대사가 없기 때문에 노래가 대사인 곡들을 노래처럼 들리지 않고 대사처럼 들리게 노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남은 연습 기간 동안의 숙제다.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에요. 원래 어른스럽고 조용한 편이지만 전에 비하면 또 달라졌거든요. 환경도 바뀌었고 마음가짐도 바뀌었고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내 안의 변화가 많았어요. 배우 생활을 오래 하려면 적정한 선에 머무르기 보다는 좀 더 힘들고 지치더라도 항상 도전하고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의 꿈이 현실이 되면 또 다른 꿈을 찾아나서는 그렇게 고이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의 꿈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하지만 처음 무대에 선 순간부터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한 가지는 무대에서 즐겨야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도 아니고 직업이기 때문도 아닌 스스로가 원한 것이기에. 그래서 김다현은 돈 주앙이 되려고 한다기보다는 돈 주앙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영혼을 당기는 자석처럼_강태을
가장 먼저 돈 주앙으로 낙점된 강태을은 연습하다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 많아진 생각들이 서로 뒤죽박죽 엉켜 있다가 정리가 된 순간 무대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며. 연습을 일찍 시작한 덕에 그 단계가 빨리 찾아왔다는 그에게 <돈 주앙>은 처음 만나는 자유가 분명하다. 지난 5년간 일본의 극단 시키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지만 이와 같은 작품은 없었다. "일단 송쓰루 뮤지컬이 처음이에요. 해보니까 다른 공연보다 집중력이 배로 필요하고 자기 개인적인 스토리 라인이 없으면 감정 표현이 힘들더라고요. 돈 주앙은 남자라면 누구나 가져 봄직한 로망을 실현한 인물인데 (웃음) 그걸 어떻게 극에 적합하게 합리화시켜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죠. <돈 주앙>의 영상을 봤을 때 지금까지 봐온 뮤지컬과는 너무 다른, 앞서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캐릭터가 팝적인 노래, 락적인 노래, 라틴 풍의 노래를 두루 섭렵하고 플라멩코와 펜싱에 거만함까지 갖췄다니 이런 캐릭터는 어디에도 없었거든요. 매력적이라고 느낀 순간 '이건 해야 한다'가 되었죠." 지난 해 하반기 뮤지컬 <대장금>의 조광조를 시작으로 <록키호러쇼>의 프랑큰 퍼터와 <돈 주앙>의 타이틀 롤까지 연달이 거머쥔 강태을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샛별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맡은 캐릭터를 위해 기본 3개월은 발성을 바꾸는 기간을 갖는 노력이 있었고, 매일같이 발레와 재즈댄스를 배우고 춤을 출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인내가 있었다. 준비된 신인이란 말이 비로소 제 짝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반응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주변 반응에 흔들리고 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배우가 아니라 스타가 되고 싶은 한 사람이 되고 말죠. 제 목표는 배우이지 스타가 아니거든요. 아직 방송이나 영화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뮤지컬을 하고 싶어 일본에서부터 많은 준비를 해왔던 것처럼 만약 다른 장르로 넘어갈 생각이라면 그만큼의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긴장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일 어떤 무대에 설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고, 무대 위에서 배우가 자신만의 색깔을 발산하는 것은 용납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강태을은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며 돌아갈 때를 기다렸다. <아이다>에서는 일부러 댄서 역에 지원해 춤을 배웠고 <맘마미아>를 하면서는 앙상블 노래에 귀를 많이 열고자 했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하면서는 뜨거운 열정을 배웠다. 그리고 모든 게 복합적으로 필요한 <캣츠>의 멍커스트랩 역을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공연을 하니 어떤 작품이든 자기 속에서 만든 캐릭터로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죠. 하지만 표현에 자유가 생겼다고 연습을 제대로 안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용납이 안돼요. 그건 거짓말이니까. 아직 부족한 내가 짧은 연습으로 무대에서 관객을 감동시킨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거든요. 때문에 식상하지만 연습만이 살길이고 연습 없이는 잘할 수가 없어요."
대학 때 학교에서 올린 뮤지컬을 연습할 때도 뜻대로 노래가 안 되면 한 소절을 천 번은 불렀다고 하는 지독한 연습벌레 강태을. 한때 농구선수였던 그는 상대가 강팀이라면 경기 전의 긴장감이 투지로 불타올라 경기가 더 재미있어 졌다는 승부사였다. 그에게 <돈 주앙>은 강한 적수이자 빨리 붙어보고 싶은 상대. 그러기 위해선 철저하게 자신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많은 배우들과 스페인 댄서들과 화려한 조명과 무대에 사이에서 제대론 된 빛을 발휘하지 못 할 거라며 그는 다시 연습이라는 공을 들고 무대라는 경기를 시작한다.
 
달콤 쌉싸름한 도전_주지훈
 
주지훈의 이름이 또 다른 <돈 주앙>의 후보로 올랐을 때 적잖은 사람이 놀랐을 것이다. 그가 변신을 원해 뮤지컬에 도전한 아이돌 가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표한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베테랑 모델이었으니 무대가 낯설진 않겠지만, 한창 잘나가는 배우가 돌연 뮤지컬을 그것도 노래가 관건인 프랑스 뮤지컬을 하겠다니 그 의중이 궁금했다. 그러자 이 영민한 배우는 "무대에서 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기본적으로 무대를 좋아해서 모델을 했었고 연기자로 전향하기 전부터 뮤지컬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영화 <앤티크>의 시사회 때 <돈 주앙>의 대본을 받았죠. 배우는 그게 익숙한 장르든 새로운 장르든 매번 작품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잖아요. 영화를 한 작품 한다 해도 거기에 필요한 호흡법을 다시 배우는 것처럼 뮤지컬에 도전해 배우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요. 욕심도 있었지만 영화 현장에 적응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니까 이쯤에서 피를 한번 싹 바꾸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하. 여유가 생기면 안주하게 되잖아요. 그게 싫었고 또 군대 가기 전에 이십대에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보자는 바람에 뮤지컬이 맞아 떨어진 거예요." 때로는 매력과 두려움과 흥분이 한 선상에 있을 때가 있다. 뭔가에 순간 집중 하는 게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이 풀로 계속 집중해야 하는 뮤지컬은 그에게 알수록 어렵고 할수록 끝이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결코 힘든 내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혼란조차 과정이고 수순이라 생각하며 다만 욕심만큼 해내기에 시간이 부족한 게 걱정이라고 털어놓는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도 하루 아침에 뮤지컬 배우들만큼의 음악적 지식이 쌓이는 건 아니잖아요. 미묘한 음의 차이며 마이크를 썼을 때의 발성이 아직 미궁이거든요. 안무도 만만치 않아요. 무대에서 서는 자세며 걸음걸이, 시선 하나까지도 저에겐 안무나 다름없으니까요. 같은 감정을 표현한다 해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 다른 무대적인 감정 표현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극의 흐름상 배우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감정이 있잖아요." 이는 비단 뮤지컬 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도 적용이 된다. 덕분에 그는 폭 넓은 수용이라는 또 하나의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주지훈은 무엇이든 많이 느끼려 하고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얻은 다양한 면면이 연기를 할 때 증폭되어 나오는 법. 감성이 잠들지 않게 늘 깨어있고 싶다는 그는 배우는 예민해야한다고 덧붙인다. 날카로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성을 잘 느낄 수 있는 예민함 말이다. "배우는 상상력에 한계를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연기에는 감성적인 부분이 크잖아요. 그래서 아역배우들이 잘하는 거예요.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대로 뿜어내는 무한 상상력을 가졌으니까. 일이 없을 때는 거의 집에 있어요.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죠. 골똘히 생각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냄새가 나요. 바람 냄새도 나고 햇빛 냄새도 나고. 그 냄새에서 과거의 어떤 기억을 읽을 때가 많아요. 거기에서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감정들이 나오거든요."
오감 중에 후각이 가장 오래간다고 했다. 길을 가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역시 냄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주지훈에게서는 책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넉넉지도 않았고, 컴퓨터도 없고, TV도 못 보게 해서 실컷 볼 수 있는 건 책 밖에 없었다며 웃었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감성적인 배우를 만든 셈이다. 그렇다고 무엇을 얻기 위해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오래된 습관처럼 침대 맡에, 차 안에, 거실에, 화장실에 손이 닿는 어디든 책을 놓아둘 뿐. 그렇게 탐독은 얼기설기 얽힌 감정들을 남기고 이는 연기 안에 풀어져 나오는 법, 이는 주지훈이 연기하는 돈주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다.
 
editor_김아형 photographer_윤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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